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03>

정충신이 다이샨을 노려보며 분명히 다시 말했다.

“본래는 헤이룽강 쑹화강 이천리 밖까지 모두 우리 조상 땅이여. 고조선 때부터 우리 민족의 영원한 삶의 터전이었다니까. 그러니 우리의 고토를 되찾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런 꿈 아닌가?”

“꿈도 야무지군. 너희 나라 군사들이 지키지 않고 침약군을 피하거나 도망가버리니 적들이 차지해버렸잖아. 지키지 않는 땅은 정복당하게 돼있어. 그렇게해서 여진 부족이 터를 잡고 산 지도 어언 기백 년이 되었다구. 그래서 우리 누르하치 가문이 여러 여진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해서 대금(후금) 제국으로 만들려는 것이야. 그게 당연한 일 아닌가. 너희는 선비의 나라인지라 이런 영토개념도 없고, 제 자리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겨온 나라 아닌가. 맹자왈 공자왈만 부지런히 외우면 떡이 나오는 나라잖나. 그런데 자네는 좀 다르군.”

“물론 나는 다르지.”

정충신이 모욕을 당한 기분이어서 주먹을 더욱 불끈 쥐어보였다. 저 광활한 대지를 어떻게 저런 야만족들에게 내주었단 말인가. 무기라고 해봐야 칼과 활 뿐인데. 거기에 비해 우린 화약병기와 천자병통, 지자총통, 진천뢰, 호준포, 포차, 화포 불량기도 갖추지 않았나. 그런데도 도망가? 자존심도 없었나. 한심스런 조상인 것이다. 단순히 현재의 땅을 지키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현재의 땅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병법의 기본 원리도 모른다.

정충신은 우리의 영토를 확고히 하고자 세종이 두만강과 압록강 사이에 북방 경계를 치고 철벽방어를 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세종은 최윤덕 장군을 시켜 침략해오는 여진을 방어했다. 그러나 이것들을 저 멀리 동토 끝으로 밀어버렸어야 했다. 두 번 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종을 멸절시키는 따위로 요절을 냈어야 했다. 그런데 강가로 간신히 밀어붙이고는 할 일 다했다고 돌아오고, 속히 전속가기를 바랐다. 사명감은 꿩구워먹은 것이다.

하지만 물러난 이만주 세력은 다시 세를 규합하여 몰래 스며들어와 이번에는 자신들이 점령했던 온성 종성 경성 경원 회령 부령 6진을 반환하라고 큰소리쳤다. 남의 땅을 빼앗아 살다가 쫓겨나더니 다시 자기네 땅이라고 돌려달라고 한다. 아때도 최윤덕은 병력을 편성하여 여진족을 몰아냈으나 역시 두만강과 압록강 변경까지였다. 그러니 기회만 있으면 습격해 집적거렸다. 그중 녹둔도의 수확물은 지네들 것처럼 여겼다.

“우리가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어중간하게 혼만 내주니 어느결에 압록강 두만강이 국경선이 되고, 이 국경선도 불안하게끔 그놈들이 쳐들어온단 말이다.”

정충신이 정세를 따져나가자 다이샨이 말했다.

“정충신 만호, 여진 부족의 기질이나 성향을 잘 모르는군. 여진족은 철저한 기마민족이야. 기동전과 약탈전이라면 끝내주는 부족 아닌가. 지금 분열해 있으니 세가 미약하지만 하나로 뭉쳐 단결하면 대륙을 집어삼킬 것이야. 내가 그 일을 할 걸세. 그러니 나와 화친해서 저놈들 몰아내고, 조선은 주민들 평화롭게 살도록 하면 되잖는가. 등 따숩고 배부르면 원이 없잖나. 선비의 나라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이 쑤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인가. 고상한 나라답게 유유자적하면 되는 것이지.”

하긴 지금 당장 힘도 없고 세도 없는데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지금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하세. 약탈하는 오랑캐 놈들을 섬멸해야겠네.”

“좋은 말이야.”

정충신과 다이샨은 전략을 짠 뒤 정충신 병사들을 강 건너 협곡에 매복시켰다. 다이샨은 다른 쪽에 자신의 부대를 세웠다. 조선 국경 안쪽 강기슭 마을에다가는 곡식더미와 약초와 호피, 녹피를 걸어놓았다. 오랑캐들이 환장하는 것들이다. 달이 중천에 떠오른 해시경 오랑캐 무리들이 말을 타고 야릇한 괴성을 지르며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 숫자가 200여 남짓 되었다. 그들은 양곡더미와 널린 값진 물건들을 보면서 띠호아!를 연발했다.

“곡식은 말 수레에 실어라 해. 수레는 천천히 오고, 호피 녹피 웅담 약초 따위는 우리가 먼저 쓸어간다 해! 야호!”

그들이 물건을 쓸어담을 때 벼락같이 횃불을 든 무리들이 창을 들고 쏜살같이 질주해 이들을 덮쳤다.

“후퇴다!”

오랑캐들이 말잔등에 오르자 마자 내빼기 시작했다. 젖먹이 때부터 말잔등에서 자라온 그들인지라 말 달리기는 어느 누구도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뒤를 쫓는 조산보 병사들을 얕보듯이 그들은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며 또다시 야릇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강심에 이르자 하나같이 강물 속으로 빠져들어 허우적거렸다. 그들은 찬 얼음장 밑에서 시체로 떠올랐다. 그들이 강을 건너 약탈하는 사이 강 건너편에 매복해있던 정충신 부대가 도끼로 모조리 얼음장을 깨뜨려 놓았던 것이다. 강심에 당도하지 못한 적병은 다른 정충신 부대 갑조와 을조의 공격으로 모조리 고꾸라졌다. 식량도 잃긴커녕 수레와 말도 얻었다.

“양곡 수레는 그대로 진영으로 끌고 가라. 그리고 얼음물에 수장된 놈들을 모조리 꺼내 목을모조리 잘라라! 육상에서 잡은 놈도 마찬가지다!”

정충신이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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