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건네주는 인생 조언
<전남 신안 도초도 ‘섬마을 인생학교’ 체험기>

최장 1개월간 스트레스 버리고 오로지 나에게 몰두
탁 트인 바다와 바닷바람은 밀린 생각하기 최적화
섬사람들 인생 이야기 들으며 ‘나’ 되돌아보기도
“몸과 마음 지친 현대인들에게 주는 자연의 처방”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신안 도초도 섬마을 인생학교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하고 있어 화제다. 섬마을 인생학교의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과 때묻지 않은 도초도의 자연환경이 입소문을 타며 전국 곳곳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도초도 수국공원에 오른 섬마을 인생학교 4기 참가자들.
중·서부취재본부/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천사의 섬 신안 ‘도초도’엔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특별한 학교가 있다. 하얀 백사장과 파란 파도가 감싸 안은 이 학교에선 다큰 어른들도 모두 순수한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신안군이 예산을 지원하고 100% 민간에서 운영하는 도초도 섬마을 인생학교의 얘기다. 덴마크의 성인용 대안학교 폴케호이스콜레(Folkehojskole)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접목시킨 이곳에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가족과 못 다한 이야기, 때묻지 않은 자연을 누릴 수 있다. 특히 도초도에서 먹는 모든 음식은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려주듯 식욕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세대 불문,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섬마을 인생학교를 체험했다.

시목해수욕장에 누워 명상을 즐기는 섬마을 인생학교 4기 참가자들.

◇지친이 달래는 인생학교=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2박3일간 전남 신안군 도초면·비금면 일원에선 섬마을 인생학교 4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지난달 문을 연 섬마을 인생학교는 신안군이 예산을 지원하고 사단법인 꿈틀리가 운영하는 민-관 협력형 성인용 대안학교다. 4기 인생학교에 참여한 24명의 학생들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도초도와 비금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 모두 사는 곳과 살아온 삶의 궤적은 제각각이었지만 ‘쉼’을 찾아나선 이번 여정의 이유는 대부분 비슷했다. 2박3일 일정을 채운 프로그램들도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달래기라도 하듯 휴식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로 채워졌다.

도초도의 유일한 찻집 ‘꽃띄움 카페’에서 진행된 꽃차 강연.

첫날 저녁 도초도의 유일한 찻집 ‘꽃띄움카페’에서 이뤄진 꽃차 강연은 들뜬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시간이었다. 따뜻한 목련차와 비트차, 보리순차를 마시며 듣는 카페 주인의 인생 이야기는 듣는이들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했다.

20여년간 서울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가 지난 2012년 아버지의 병수발을 위해 고향 도초도로 돌아왔다는 황충성 꽃띄움카페 대표는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아내와 함께 도초도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아버님 유언에 따라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레 신학 공부를 하는 것은 고민과 슬픔의 연속이었다”면서도 “신학의 길로 접어든 뒤엔 자연속에서 보이지 않는 신과 함께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다 나무와 흙속으로 되돌아가려고 마음 먹었다”고 회상했다.

다음날 이어진 성인용 대안학교 전문가 홍문화씨의 ‘조르바의 춤’ 시간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식으로 진행됐다. 홍씨는 “기쁨은 물론 모든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속 주인공 조르바에서 착안한 이 춤은 내마음이 시키는대로 몸을 움직여보면서 내몸과 마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홍씨의 시범을 본 참가자들은 이내 눈을 지그시 감고 내키는대로 몸을 움직이며 온전한 자기만의 시간에 빠졌다.

경기도 의왕에서 온 이미정씨는 “살아오면서 내 몸으로 안해본 동작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그동안 무언가에 억눌려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초도 공설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인생학교 참가자들.

자연이 주는 치유의 시간도 이어졌다. 인생학교 숙소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목해수욕장을 찾은 이들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해수욕장의 모습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반달 형태의 해변을 여유로이 거닐다보면 어느새 시름이 잊혀졌다. 도초도와 서남문대교로 이어진 형제의 섬 비금도도 더할 나위 없었다. 하트 모양을 닮아 하트해변으로 불리는 하누넘해변은 물론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진 4㎞ 길이의 비금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같은 이름의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도초도에 위치한 신안군생태교육원 김정춘 소장은 “도초도와 비금도를 간직한 신안군은 전세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생태의 보고”라며 “이곳을 찾은 도시인들은 자연이 주는 치유의 선물을 받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트모양을 닮아 하트해변으로 불리는 하누넘해변.

◇“또 오겠습니다…”= 섬마을 인생학교 마지막 날. 순식간에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친 섬마을 인생학교 참가자들은 “꼭 다시오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 자연의 선물, 전라도의 맛을 만끽했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또 섬마을 인생학교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다면서, 각자 자리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3대가 함께 이곳을 찾은 오상현씨는 “맛집 투어가 아니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밥상에 올라온 톳밥과 아구탕, 간재미 회 등이 모두 일품이었다”며 “잘 먹고, 잘 쉬다 간다”고 작별 인사를 전했다.

홀로 포항에서 온 이창희씨는 “모든 프로그램을 할때 마다 함께한 여러분들이 있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온 김연원씨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단순히 친구 추천으로 참여했는데,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면서 “이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통해 함께오지 못한 큰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집으로 가는길이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초도 시목해수욕장을 지키는 누렁이.

김해에서 온 안현정씨도 “따뜻한 동지들을 만난 것 같아 전혀 외롭지 않았다”며 “같이온 아들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려줄 수 있어서 모두에게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찬사가 이어진 섬마을 인생학교는 행복한 삶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에 주로 20대 중반이 참여한다면 섬마을 인생학교는 전 세대가 참여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오연호 꿈틀리 이사장은 “국민 대부분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덴마크와 달리 우리나라는 모든 세대가 성인용 인생학교를 필요로 한다”며 “20대는 20대대로 30대는 30대대로 휴식을 원하고, 40·50대의 고민도 이루 말할 것 없다”고 설명했다. 오 이사장은 이어 “대화에 목마른 가족들도 많다”며 “가족체험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섬마을 인생학교에 가족 참가자들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섬마을 인생학교는 매 기수를 모집할때 마다 참가자가 몰려 조기마감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는 6월 진행되는 5기도 모집 하루만에 60여명의 참가자가 꽉찼다. 4기 또한 3기 참가자들이 넘쳐나면서 갑작스럽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비금 명사십리 해수욕장.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섬마을 인생학교는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와 기숙사도 준비중이다. 폐교한 도초서초등학교에 터를 잡을 예정인 인생학교 주캠퍼스엔 최장 3개월간 머무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곳은 현재 설계 용역이 진행중이다. 또 2박3일 일정의 가족체험 프로그램이 어느정도 틀을 잡으면, 오는 10월부턴 한달 과정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오 이사장은 “장기적으로 10년 안에는 도초도에 성인용 인생학교와 청소년 인생학교, 인생학교 교사들을 양성하는 교사대학 등 3개의 학교가 운영되길 바란다”며 “이같은 큰 목표는 섬마을 인생학교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지성이 모여 결국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중·서부취재본부/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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