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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3)

기사승인 2019.11.14  19: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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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3)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63)

장만이 화를 내자 정충신은 일순 난감해졌다. 화가 나라고 얘기한 건 아니고, 그 정도로 얘기했으면 알아들을만 하다고 여겼는데 끝내 역정을 낸다. 자기 권위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인가? 하지만 장만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관 앞에서 끝까지 우기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한남도원수 심기원이 나섰다.

“정 공, 도원수 어른 말씀이 맞소. 정 공이 한양을 떠나면 귀환하시는 주상을 누가 영접하겠소이까.”

부원수 이수일도 나섰다.

“이번 전투에 가장 큰 전공은 정 전부대장이 세운 것인데, 주인공이 빠지면 우리가 뭐가 됩니까. 도원수 말씀대로 우리를 엿먹이자는 것이 아니라면 머물러주시오.”

계원장 남이흥, 좌협장 유효걸, 독전어사 최현 역시 가세했다.

“전부대장이 상감을 영접하지 않으면 상감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습니까. 정 장군이 아니면 신속하게 승전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 와서 공을 세운 게 없다고 말한다면 다른 장수들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야지요. 다른 장수들 핫바지로 만들지 말아주시오.”

정충신이 차분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나는 승전을 기뻐하고 그것을 자랑삼아 상감을 영접할 심정이 아닙니다. 나는 별장 임경업으로 하여금 역적 이괄, 한명련 등 아홉의 수급을 가지고 공주 행재소로 달려가 바치라고 명했지요. 그런데 임경업은 중도에 돌아왔소이다. 이유인즉 전공이 많은 정충신보다 먼저 상감을 뵈올 면목이 없다고 했습니다. 임경업은 길마재(안산)싸움에서 나를 보좌해 싸우다가 그 형제들이 전투에 참전한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그런 임경업은 지금 맏형 승업과 아우 준업과 함께 용산으로 나가 부고(府庫:관청의 문서나 재물을 넣어두는 곳간)를 지키고 있소이다. 공을 바라지 않고 숨어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그를 보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소이다. 임경업보다 연장자로서 어찌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다른 장수들이 조용해졌다. 정충신이 내처 말했다.

“여러 장군들의 뜻을 거역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라 안이 어지러울 때 임경업을 본 삼으면 질서가 잡히리라 봅니다. 난국일수록 못믿을 게 무신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보루 또한 무신입니다. 임지로 가는 본관의 뜻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호상에 앉아 묵묵히 듣고 있던 도원수 장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충신에게 다가가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

“그대가 참으로 장수요. 마침내 논공의 질서를 잡았소이다. 뜻이 정 그렇다면 내 어찌 말리겠소. 떠나시오.”

“죄송스럽고도 감사합니다.”

정충신은 도원수부를 물러나와 자기 진으로 돌아가 안주 군졸들을 모아놓고 하명했다.

“우리가 도성을 구원하러 왔다가 마침내 임무를 완성했다. 도성을 수복하고 역적의 무리들을 모두 베었으니 우리의 도리는 다한 것이다. 이제 나리에서 우리에게 안주를 튼튼하게 지키도록 명했으니 임지로 회군한다. 즉시 임지 귀환 준비하라.”

이 말을 듣고 안주 병방 이군세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의 앞에 불쑥 나섰다.

“아니되옵니다. 사또께서 큰 전공을 세우셨으니 어가의 환도를 보시고 가시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왜 며칠을 못참습니까? 공을 과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환대해야지요.”

“너의 말도 일리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임금의 영(令)도 없이 여기 온 것은 일이 급해서 권도(權都)에 온 것이다. 다행히 평정되었으니 근무지로 되돌아가는 것이 군인의 길 아니더냐. 농가를 비우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 도원수 어른께서 한양에 머물고 계시니 안심하고 떠날 수 있다. 군말 말고 준비하라.”

정충신은 도원수에게도 임금을 뵈올 여건을 만들어준 것을 안도했다. 정충신이 드디어 안주 군영을 수습해 북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홍제원으로 진입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안현고개가 눈앞에 보였다. 남다른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이때 도성의 장수들이 말을 타고 안현고개를 넘어오고 있었다. 맨 앞에 장만의 말이 보이고, 모두 열두 명이었다. 정충신이 임지로 떠나는 길을 전송하기 위해 장만이 부하 장수들을 이끌고 뒤따른 것이다.

“송별주 한잔 안하고 떠날 수 있는가. 내 섭섭해서 달려왔소.”

장만이 정충신 앞에 이르러 풀밭에 앉기를 권했다. 정충신은 술잔을 받아놓고, 남쪽을 향해 망배(望拜:멀리서 연고가 있는 그리운 이를 향해 절하는 것)했다. 공주 행재소 방향을 보고 절을 한 것이다.

“참으로 주상은 인복이 많으신 분이시오. 이런 충신을 가졌으니 열 명의 괄이 다시 살아나와도 주상의 보위는 끄떡없을 것이오.”

장만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1624년 2월 19일의 일이었다. 인조가 공주행재소를 출발한 날이다. 그 사흘 후인 2월 22일 오후 인조는 한강 남안 노량나루(노량진)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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