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어 가는 인생 발자취 기록으로 남겨…”
고령 어르신들 삶 담아낸 ‘싸목싸목 걸었제’ 자서전 발간
동구, 청년멘토단 도움·다양한 이웃들 사연 수록해 눈길
 

지난 15일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 ‘싸목싸목 걸었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자서전은 훌륭한 사람만 쓰는 것인 줄 알았는데…소소하지만 인생의 소중한 추억을 들려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어르신들의 삶의 기억을 담은 이야기가 자서전으로 출판됐다.

지난 15일 광주광역시 동구에서는 어르신 23명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 ‘싸목싸목 걸었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는 어르신들의 판소리, 스포츠댄스 등 공연과 자작시 낭송, 출판기념 소감발표 등이 진행됐다. 어르신들의 가족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를 축하하러 온 손자손녀들도 함께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다~”를 외치며 꽃다발을 안겨드리기도 했다.

부모님을 여의고 일찍 가장이 된 소년, 30여년간의 암 투병 끝에 얻게 된 소중한 삶, 늦깎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등 수많은 사연들이 총 5권의 책 속에 담겼다. 글쓰기가 서툰 어르신들도 많아 청년멘토단이 듣고 기록하는 과정을 돕기도 했다.

정병춘(70)씨는 지난 1988년 위암 판정을 받고 30년의 투병생활을 통해 얻은 소중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는 “당시엔 암이라고 하면 죽는 병으로 알고 있었다. 슬픔과 공포가 파도처럼 몰려들어왔다”며 “초기였지만 식도 바로 밑에 암병집이 있어서 전체를 잘라내야만 했다. 수술 후에도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심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자서전 작업을 통해 과거 먹고살기에만 바빴던 시절을 지나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더욱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가야겠다는 꿈을 그릴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영자(84·여)씨는 “자서전은 훌륭한 사람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 몇 번을 포기할까 망설였다”며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개개인에게는 소중한 순간이다”고 말했다. 이어 “자식들에게 이렇게라도 발자취를 남김으로서 삶을 값어치 있게 바라봐 준다면 큰 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남은 인생을 더욱 의미 있게 발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총 5권으로 이뤄진 ‘싸목싸목 걸었제’ 자서전.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조선대 문예창작과 대학생원생과 만화애니메이션 학부생들로 구성된 청년멘토단은 어르신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글쓰기를 지도했던 배진우(28·조선대 문창과 대학원 박사과정)씨는 “어르신들의 사연을 통해 울고 웃으며 인생의 경험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니 아쉬움도 남지만 어르신들의 삶에서 빛나는 부분을 기록으로 남겨드릴 수 있어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택 동구청장은 “어르신들의 자서전 출간을 축하드린다. 이번 자서전을 보면서 저희 어머니께서도 살아오신 이야기를 글로 남겨 놓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며 “앞으로도 어르신을 공경하는 따뜻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어르신 생애출판을 비롯한 인문사업을 확대·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구청 1층 로비에서는 오는 29일까지 이번 자서전과 관련된 전시회가 열린다. 박일구 사진작가가 직접 찍은 어르신들의 프로필 사진과 글, 대학생들이 그린 삽화 등도 전시된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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