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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8)

기사승인 2019.11.21  18: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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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8)

제4부 풍운의 길 4장 대수장군(468)

“김 병판 그것은 잘못 보았소. 정 공은 나에게 부임 인사하러 왔었고, 그는 이괄의 친구이긴 하나 그의 동태를 살폈소이다. 그리고 그와 이상과 뜻이 맞지 않아 확실하게 갈라섰소이다.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 공이 그와의 유대를 지속시켰을지 모르오. 그랬다면 큰 일날뻔했지. 하지만 이괄의 야망이라는 것이 자신의 녹훈에 불만을 품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정충신이 호되게 꾸짖었소이다. 그런 사사로운 것을 가지고 국가 대사를 망치려 하느냐며, 그것은 대인의 풍모가 아니다. 평소 이괄의 기개와 웅지를 평가했는데 고작 그런 녹훈 따위로 소인배가 되느냐, 그런 소인배와는 친구로 둘 수 없다고 다른 길을 택한 것이었소. 신하란 일찍이 나아갈 바를 살피되 길이 아니면 친구지간이고, 인척간이라고 해도 결별하는 것이오. 그래도 그 길이 쉬운가. 정의와 친분이 작동하면 합리적 판단보다 사적 인연에 매달리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정 공은 그것을 무 자르듯 분명히 갈랐소이다.”

정충신이 아뢰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하지만 저는 이괄이 도망갈 때 뒤쫓아가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도망자의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 장수의 품격이라고 보고 놓아주었습니다. 남이 볼 때는 친구니까 보아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를 살만하고, 지금 저로서도 그점 성찰하고 있나이다.”

“그것 보시오. 정 공의 그릇이 아니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오. 대개의 사람들은 비겁하게 도망가는 자를 뒤쫓아가 목을 따서 영웅이 된 기분으로 상감께 수급을 바쳤을 것이오이다. 하지만 정충신은 군도(軍道)로서 인의와 덕행으로 그자에게 진정한 군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것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자는 깨우치지 못하고 욕망과 탐진에 파묻히다 비참하게 자멸해버린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정 공이 생각하는 진정한 군도가 아니겠소. 진정한 군도는 세상만물을 이기는 법이오.”

장만의 말에 김류가 약간 목을 움츠리며 정충신에게 얼굴을 돌렸다

“정 공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진실로 그동안 잘못한 것이 없었소?”

정충신이 나섰다.

“소인은 이천리 먼 고향을 떠나와 외로운 처지입니다. 그런 중에 이괄과 사귀었습니다. 이괄은 한양의 문벌이고, 주변에 출세한 인척들이 많은즉, 사귈수록 좋다고 생각했고, 도 배울 바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때 소인이 미리 신고하여 이괄이 죽게 되면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친구를 모함하여 영예를 구하는 추한 인간이라 할 것이요, 이괄이 그런 일이 없다고 소인을 무고죄로 고발하면 역적을 없애려다가 도리어 그자에게 소인이 엮여 죽게 될 것입니다. 소인이 안주를 버리고 평양에 간 것은 소인이 이괄과 친한 사이였으니 이괄 반란 음모에 가담했다고 장만 도원수 어른께서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괄보다 먼저 출발하여 평양에 갔던 것이며, 안주성을 비워도 이괄이 한양으로 전진하기에 안주는 안심스럽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결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김류가 무엇엔가 자신감을 얻은 듯 다시 물었다.

“흥안군 제는 국가의 큰 죄인인데 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죽이자 하였던가?”

“그 사람은 과정이야 어떻든 용상에 앉았던 사람인지라 상감께옵서 용서하시려 해도 국법이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감마마의 어가(御駕:임금의 수레)가 오신 뒤에 죽이면 후세에 사가들이 임금이 숙부를 죽였다고 쓸 것이니, 차마 임금을 사기(史記)의 기록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나이다.”

조용히 듣고 있던 인조가 무릎을 탁 쳤다.

“과연 정충신은 이름대로 충신이로다. 또한 지용(智勇)을 겸비한 장수로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멀리, 높이 보는 안목은 그의 깊은 사유에서 나온 것이니, 누구나 배워야 할 것이다.”

왕은 당장 회의를 물리치고 정충신 환영식으로 바꾸었다. 왕이 어주 삼배(三盃:三杯의 고상한 말)를 탑전(榻前:임금의 자리 앞)에서 하사하니 정충신이 엎드린 자세로 마시었다. 술이 독해서 3배를 하자 머리가 어찔했지만 꾹 눌러 참고 버텼다. 왕 곁에 보좌했던 좌찬성 겸 어영사 이귀가 말했다.

“지금 서도(西道)를 지키는 장수가 없고, 또 난리 뒤에 인심이 안정되지 못했으니 곧 정충신을 안주고 보내고, 연로(沿路)의 군민을 위로하고, 안주를 지키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러나 김류가 뿔이난 모양으로 한마디 했다.

"어차피 공훈록을 작성해야 하니 청문회를 열어야 할 것이오.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니까요."
정충신의 행적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왕이나 장만이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공정과 공평을 내세우는데 달리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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