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의 세상읽기-이낙연의 재발견
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올 한해도 20여 일을 채 남겨 두지 않았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0년 만에 2%대를 붕괴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정치권은 팍팍해진 경제에는 관심이 없고 여야 간에 피 터지는 싸움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은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나눠진 한해였다.

청와대가 며칠 전 ‘검찰개혁’이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공석인 법무부 장관 원 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끊임없이 교체설이 나돌던 이낙연 국무총리는 다시 후일을 기약하게 되었다. 인사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럼 에도 이 총리는 자신의 향후 중대한 정치적 거취를 연말 연초까지는 결정해야 한다고 보면 그 결정은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여권의 여러 복잡다단한 이유로 총선까지 총리직을 유지하든, 총리직을 물러나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 내년 총선을 공동 선대위원장의 투 톱 체제로 이끌던, 아니면 총선 출마까지를 포함하든, 이 모든 결정이 한 달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 출마한다면 공직 사퇴시한인 내년 1월 16일 이전에 지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총리직 사퇴 이후 이낙연은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재발견 될 것인가 하는 점은 관심사이다. 그가 어떤 결단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까.

여권에 번져 있는 이 총리의 총선 역할론은 당연히 그의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해 이맘때쯤 본보 지면을 통해 ‘이낙연 1위, 스치는 바람이거나 예사롭지 않거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스치는 바람일 수 있다’는 예단을 걷어 들인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굳건하게 1위를 지키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심지어 주식시장에서는 이낙연 테마주까지 형성되며 주가가 신고가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과연 이낙연은 김대중(DJ) 이후 호남 출신으로는 절대 정권을 재창출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로서 그렇고 호남 출신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호남을 대표하는 포스트 DJ가 돼 있었다. 호남의 선택을 넘어섰다. 이미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도를 받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 있다. 이제 주홍글씨 같고, 길고 긴 어둠의 터널 같은 ‘호남 출신 때문’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것이다.

그가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국회의원 4선과 전남도지사를 수행하다 총리로 발탁돼 2년 반을 넘겨 최장수 총리직을 수행하는 동안 대중들은 그의 무엇에 이끌려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그는 2년 6개월간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두드러지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정치적이든 아니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을만한 폭탄 발언을 한 적도 없고, 한두 번쯤 있을법한 설화 스캔들도 없었고, 그렇다고 자신의 인기를 위한 퍼포먼스도 언론에 노출한 적이 없었던 그다.

정부 수반 2인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세를 떨지 않았다. 그는 대중들에게 더욱 낮은 자세로 다가가기 위해 애썼다. 지난 주말에도 대구에 있는 독도 소방헬기 사고 순직 소방대원 합동분향소를 찾았고 이어 제18호 태풍 미탁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강원도 삼척 신남마을의 이재민들을 찾았다. 한 마디로 조용한 행보에도 대중들은 열광한다.

그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답변처럼 한다. 순간을 잘 포착하면서도 이를 놓치지 않는 저음의 카리스마 있는 촌철살인 식 답변을 하다 보니 ‘사이다 발언’이라며 환호한다.

대중들이 이 총리에게 느끼는 강한 친근감은 막걸리 애주가요 예찬론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마시던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전통주 막걸리는 이 총리가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쓰는 주(酒)가 됐다. 막걸리 총리는 이낙연의 닉네임이 될 정도다. 그와 한 번쯤이라도 막걸리 잔을 주고받은 사람은 그의 주량에 놀라면서 아재 개그와 함께 마음을 연다.

또 전남지사 시절부터 일상화된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끊임없는 소통이다. 이런 모든 조합들이 오늘의 이낙연 1위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끊임없이 분출되는 에너지가 된것이다. 한 번도 튀는 언행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최근에는 30%에 근접하며 2·3위 후보군을 10% 포인트 이상 따돌리고 있다. 그가 스치는 바람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남지사 시절 “대권 도전을 언제 하겠다는 준비는 돼 있지 않지만 만약 부름이 있다면 그에 응할 준비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던 그의 발언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 부처를 총괄하는 총리로 재임하면서 제대로 대권을 준비하는 사람의 덕목을 갖추는 학습을 한 셈이다. 여권은 어쩌면 이낙연을 통해 재집권의 희망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역대 대권 도전 총리들의 흑역사는 뛰어넘어야 할 과제다. 최근 다시 삼국지를 읽게 되면서 유비를 통해 이낙연을 보게 되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유비가 천하를 얻기까지는 관우와 장비를 만나 맺은 도원의 결의가 그 시작이었다. 부언 한다면 흐트러짐도 없고 정의로워야겠지만 자신을 따르는 식솔들을 챙기는것은 소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다. 충성은 소소한것에서부터 우러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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