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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기고-광복군 김배길 애국지사님을 보내드리며

기사승인 2020.01.21  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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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김배길 애국지사님을 보내드리며
하유성(광주보훈청장)

 

1월 15일 회의 중에 김배길 애국지사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한 쪽 가슴이 텅 빈 듯 아려왔다.

지사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추석절과 순국선열의 날, 지사님 생일을 맞아 찾아뵐 때마다 몸이 불편하신 중에도 반가이 맞이해 주셨다. 손수 음료를 나눠주시며 기관지가 안 좋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일본군을 함께 탈출했던 동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인사를 드리고 일어서면 걸음걸이가 어려우신데도 꼭 방문을 나서서 배웅을 해 주셨다.

김배길 지사님은 1926년 신안군 안좌면에서 출생,1943년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북부지역에 파견된다. 중국내 일본 부대에서 항일 구국 목적의 우국동지회를 조직하였다. 1944년 5월에는 동료 6명과 함께 중무장으로 부대를 탈출하여, 중국군 제 9전구 사령부 제 4군 유격대에 배속되어 활동한다. 이후 1945년 2월 광복군 제 1지대에 편입되어 제 3구대 제 3분대의 공작반장으로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하셨다. 정부는 지사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려 1990년 국민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김배길 지사께서는 해방 후에는 검찰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사회정의를 위해 애쓰셨고, 3남 1녀의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내 이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하셨다.

1월 15일 오후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지사님께서는 젊은 모습으로 맞아 주셨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평소와 같은 온화한 표정이 생전에 뵙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지사님은 전날 평소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시고 다음 날 새벽까지 주무시다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젊은 시절 일본군의 추적과 가혹한 형벌의 두려움을 떨치고 대한 독립의 길로 나서셨듯이, 지사님은 삶의 저 너머까지도 망설임 없이 한 걸음에 건너 가셨다.

정부는 김배길 지사님 빈소에 대통령 명의 근조화환을 보내고, 박삼득 국가보훈처장과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빈소를 찾아 지사님의 숭고한 애국정신에 경의를 표하였다. 1월 17일 운구행렬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했고, 지사님은 애국지사 묘역에서 영면에 드셨다.

지난 해 3·1절 100주년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 김배길 애국지사님께서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본이 패망하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대, 독립이 신기루처럼 여겨졌던 시대이다. 한순간의 선택에 목숨을 걸어야 하던 때이다. 그렇지만 당대의 시대 정신은 독립이었고 지사님은 올바른 선택을 하셨다.

이제 생존해 계신 애국지사님은 전국에 30분이 계실 뿐이다. 이 가운데 광주에 네 분, 전라북도에 한 분이 계신다. 다들 연세가 백세를 바라보시니 만나 뵙고 감사드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지사님의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더 큰 대한민국,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가꾸어나가는 일은 남아 있는 우리 몫이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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