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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영암 연주현씨(延州玄氏) 사직공파 종가 / 죽림정

기사승인 2020.03.26  16: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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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영암 연주현씨(延州玄氏) 사직공파 종가 / 죽림정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이웃과 400년 동고동락 구림대동계 미풍양속 이끈 명가
고려 평장사 현담윤 연주현씨 단일 시조
종가조 현윤명, 천안에서 영암 구림 입향
현건, 전후 풍속 회복 위해 대동계 재조직
현징, 왕인박사 문산재학당 재건 인재양성
이순신장군 친필 편지 서간첩 국보 76호
 

종가에 있는 죽림정. 1678년 김수항의 죽림정기에는 숙부를 향한 현징의 마음이 죽림칠현을 연상케해 죽림정이라 이름 지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정자 좌측엔 300년쯤 된 동백나무, 우측엔 벽오동나무가 있고, 숙종에게 하사받은 회화나무의 모종으로 자라나는 어린 회화나무가 정원을 가득채우고 있다. 
옛 상대포구에 있는 상대정. 구림 서호정마을은 옛 상대포구로서 왕인박사, 도선국사, 이순신장군, 송시열 등 인물의 행적이 전해진다. 지금은 간척으로 사라진 포구이지만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전통시대에는 중국 일본으로 향하는 바닷길 국제선박이 드나들고, 진도나 청해진 등 해양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포구다. 공원에 뜬 배는 이곳에서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출발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회사정. 구림 대동계의 중심 시설로서 크고 작은 회합과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이순신 친필비. 장군의 편지에 쓰여진 '약무호남시무국가' 글씨를 새긴 비석이다. 현씨 집안 현건과 그 숙부 현덕승이 받았던 장군의 편지 7통이 수합된 '서간첩'은 국보 제76호로서 현충사에서 보존한다.

국립공원 월출산 서쪽은 서해와 남해의 분기점으로 백제·신라·고려 등 오랜 기간 국제교류의 거점 포구였던 ‘상대포’와 ‘구림마을’이 유구한 역사를 품고 아름다운 풍속을 이어 오고 있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의 구림마을에 뿌리내려 이웃과 400년 동고동락한 가문 ‘연주현씨(延州玄氏) 사직공파 종가’를 찾아 호남3대 명촌 구림마을과 가문의 보물 간 관계를 살펴본다.

◇ 평안 영변 평장사 현담윤, 연주현씨 시조

현담윤은 고려 의종 때 연주성(평안도 영변)을 굳게 지켜 조위총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평장사에 올라 연산군에 봉해졌다. 연주현씨는 평안도 영변의 호족 현담윤을 시조로 37대 800년을 이어 교육과 구휼, 구국에 앞장선 가문이다. 전국 106개 지역에 살던 현담윤 시조의 자손들은 1747년 연주현씨로 단일화하고 본관을 연주로 통일했다.

◇ 현윤명, 유서 깊은 구림에 입향

현담윤 시조의 12대손 현윤명(1420~?)은 1450년경 천안에서 영암 구림으로 내려와 3대 현감 집안 난포박씨(蘭浦朴氏)와 혼맥을 맺으면서 사직공파 종가를 열었다. 당시 구림마을은 진도·완도·제주로 가는 바닷길목이자 일본·중국으로 통하는 국제 포구였던 ‘상대포’를 끼고, 도예 가마터 등 산업단지를 품은 12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유서깊은 마을이었다. 낭주최씨를 비롯, 죽정서원의 함양박씨, 서호사의 창녕조씨, 동계정의 해주최씨 등 성씨들이 부락을 이루었는데, 그 중 나주목사를 지낸 선산 임씨 임구령이 입향해 간척으로 조성한 ‘지남들’ 농토가 마을의 경제기반이 된다. 선산임씨 장남 임호(1522~1592)와 함양박씨 박규정(1498~1580) 등이 중심이 돼 1565년 구림대동계를 창립한다.

◇ 현건, 구림대동계 재조직

현윤명의 증손자 현건(1572~1656)은 침체되었던 구림 대동계를 다시 세워 초대 동장으로 추대됐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전쟁 물자를 공급했으며, 전후에는 주민의 ‘화민성속(化民成俗·백성을 교화하여 좋은 풍속을 이룸)’에 힘썼다.

구림대동계가 1609년(광해군 원년)에서 1747년 사이에 작성한 구림동헌(鳩林洞憲)과 동계(洞契) 문서가 보전되고 있다(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 동계규약은 도로 보수·산림 보호·교량 건설 등 마을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7년 전쟁의 폐허로 상하민 모두에게 무너진 질서와 생활윤리의 재건이 시급했다. 구림대동계는 사대부의 ‘향규’와 하층민의 ‘촌계’를 일원화해 지역사회 구성원 전원을 참여시키는 ‘동계’였다. 행정 공백을 자치규약 운영으로 매운 공동체조직인데 현재까지 450여년 지속되고 있다.

◇ 현징, 문산재 학당 복원

현건의 손자로서 광릉참봉을 지낸 현징(1629~1702)은 왕인박사가 배웠다는 ‘문산재’ 서당을 복원하고 학당을 열고 전라도 서남권 인재들을 가르쳤다. 내동리에 있던 취음정을 옮겨지었는데 1678년 영의정 김수항이 ‘죽림정’이라 이름짓고 중림정기를 남겼다.

종택의 입구에는 수령 250년된 팽나무 두그루가 대문을 대신하고 대나무, 소나무, 벽오동, 동백나무, 회화나무 등이 죽림정을 둘러싸고 있다.

◇ 가문의 보물이야기

종가가 보물로 보존하던 이순신 장군 친필 편지는 ‘서간첩’(국보 76호)에 담아 현충사에 보존하고 있다. 현건(1572~1656), 현덕승(1555~1627)은 장군의 인척이자 물자보급원으로 전쟁 전후에 교신했는데, 이 편지 7통을 장군의 후손에게 전했다고 한다.

종가조 현윤명 이래로 20대를 이은 가문은 현승종(1919~) 24대 국무총리,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근·현대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 가훈은 참으면 덕이된다는 ‘인지위덕(忍之爲德)’이다. 종손 현삼식씨는 “왕인박사, 도선국사 등 선인의 발자취가 전해주는 구림마을 자체가 보배이고, 회사정 등에 남은 대동계의 전통이 지방자치로 계승 발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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