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색 가득 시어로 전하는 ‘삶의 위로’
■그대만 아픈 것이 아니다
시 이수행 /사진 박균열/도서출판 역락
등단 25주년 맞은 이수행 시인
박균열 작가와 시·사진집 발표
전라도 평범한 민초들의 삶을
특유의 언어·정감으로 풀어내
주변서 접하는 생활상과 풍경들
아름다움·생명력 넘쳐…감동도
아프고 힘든 삶에 용기·희망 전달

■그대만 아픈 것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다

꽃이 피고 잎이 지듯

오고 가는 길목에서 만나고 헤어지듯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나만 특별하거나 그대만 외롭고

쓸쓸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다가 멈추듯이

꽃이 피고 잎사귀 무성해지고

한 조각 과실을 남기는 순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듯 사라지고, 또 어느 결에선

연둣빛 잎사귀가 돋아나는 것처럼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나만 불행하거나 아픈 것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 있듯이 그대도

그렇게 아프고 슬픈 것이다

혼자 힘들어하지 마라, 이 지상은

아프고 쓸쓸한 것들 천지다

지난 2000년 첫 시집 ‘영산강’을 발표해 “디지털 풍경이 광활한 열대를 구축하고 있는 세기의 벽두에 황폐한 서정의 시대를 뚫고 또 하나의 시인이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은 이수행 시인. 그가 등단 25년을 맞아 세 번째 시집 ‘그대만 아픈 것이 아니다’를 최근 출간했다. 시인은 사진작가 박균열의 작품과 함께 시를 담아내 시·사진집의 지평을 넓혔다. 박균열은 ‘피규어’를 통해 현실을 조망해 내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사진작가란 평을 듣는다.

시인은 늘 불온한 세상과 치열하게 대척해 왔다. 그러면서도 시대의 탈주와 해학적 유머를 잃지 않았다. 특유의 사투리조 시어들은 암울한 시대를 건너던 지난 시절 평범한 민초들과 함께 징글징글하게 잘도 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시집 또한 그 범주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남도 특유의 언어와 정감으로 힘들고 지친 삶에 대한 위로, 계절과 자연, 고독과 그리움, 사랑과 인생, 사회에 대한 풍자 등을 그려낸다. 우리 주위에서 마주할 수 있는 풍경과 일상을 풍부한 언어로 다양한 시 세계를 느끼게 한다. 시어들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냉철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겨낸다. ‘수말스런’ ‘해오름’ 등 전라도 방언을 다수 끌어들인 까닭에 향토색 짙고, 서정적이다. 맛으로는 감칠맛이다. 아름다움과 생명력까지 넘쳐 감동과 울림을 준다.

박균열 작

시인의 고향(나주)과 생활거주지가 전남과 광주이어서인지, 시에 등장하는 지역과 소재는 남도의 풍경과 생활이다. 영산강과 여서도, 사포나루, 생일도, 군장포, 땅끝, 법성포, 은적암, 팽목항….여기에 여와 접시꽃, 산다랑이, 상강, 유두, 벌초, 포구 등 남도에 살면서 쉽게 접하고 경험하는 일상과 사물을 시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마주한다.

시집에는 총 50편의 작품이 제1부(13편) ‘스스로 나고 피고 지고 사라지면서/제 생 몫만큼 똑 채워내는 공명들’와 2부(12편) ‘때론 버팅기고/스스로 뒤집 어지면서/ 나를 만나는 강’, 3부(13편)‘혼자 힘들어하지 마라, 이 지상은 아프고 쓸쓸한 것들 천지다’, 4부(13편) ‘물러터진 주먹밖에 없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진짜 수컷이고 당당하고 떳떳할 것인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시인은 앞선 두번째의 시집처럼 가파르고 신산한 고향의 강과 산하를 살아서 생동하는 삶의 이미지로 눈부시게 환치시키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려낸다. 세월의 등걸을 따라 만나고 깊이 투신해가는 강과 바다, 그리고 이웃들과 부대끼는 삶은 더 편하고 자연스레 온갖 물성들과 순치되고 합일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수행 시인

특히 ‘코로나19’ 시대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혼자 힘들어하지 마라, 이 지상은 아프고 쓸쓸한 것들 천지다”라며 위로한다. 아프고 힘든 삶의 여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할 나위없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이다. 시인이 이번 시집 발표를 통해 가장 원했던 목청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말라가는 입술에 매달린 소리 없는 숨/바튼 생활을 꿰매다 지친 마음속 사랑은/하오의 실루엣처럼 가뭇없다./시간은 서걱대는 바람처럼 떠나가고/오명과 부끄러움 그리고 과욕이 빚어낸/파장들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아프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와중에/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는 말에서도 잘 엿보인다.

‘한국작가회의’에서 활동중인 시인은 199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시집 ‘영산강’, ‘시디신 뒤안길’과 산문집 ‘영산강은 바다다가 있다. 제6회 광주일보 문학상을 받았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사진/도서출판 역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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