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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곡성 장흥마씨(長興馬氏) 충정공종가

기사승인 2020.07.09  19: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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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곡성 장흥마씨(長興馬氏) 충정공종가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백제·조선 건국 도운 공신 명문가

기자와 함께 고조선으로 온 마장
백제 건국 공신 장흥군 마려 ‘시조’
조선 상장군·대제학 문무겸비 마천목
청백리 마승 따라 충의 지킨 후손들

 

마천목장군 사당 영모재

세종이 하사한 부조묘인 충정묘

전남 곡성 석곡 장군봉 아래에는 백제와 조선의 개국에 큰 공을 세운 집안의 종택이 있다.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마려의 집’은 장흥마씨가 뿌리 깊은 가문임을 보여준다. 장흥마씨의 본고장 전남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세대를 이어오는 곡성 장흥마씨 충정공 종가를 찾아 나라를 세우고 국가 기반을 다진 인물들이 전하는 삶의 지혜를 살펴본다.

◇백제 개국공신 마려, 장흥마씨 시조

중국 은나라 주왕 때 덕망있는 군자 마완이 마씨의 원조다. 마완의 아들 마장이 주왕의 폭정을 피해 은거했던 기자와 함께 조선으로 왔다. 고구려에서 한강 위례성으로 남하한 온조왕을 도와 백제를 개국한 공신 마려가 장흥(옛이름은 마사량현, 회령)을 식읍으로 받아 장흥마씨 시조가 된다.

천년 후 고려 개성판윤 마혁인이 장흥마씨를 중흥시켰다. 마혁인의 4세손 마희원이 고려 평장사를 역임했다. 마희원 아들 마중기가 한림학사 승지를, 마중기의 손자 마지백이 국자감 제학을, 그 증손자 마수손이 문하시중평장사를 역임하는 등 장흥마씨는 고려 명문가로 알려졌다.

◇남방과 북방 탄탄 마천목, 조선 기틀 세워

마혁인의 11세손 마천목(1358~1431)이 충정공 종가를 열었다. 그는 고려말 정지장군의 발탁으로 무인이 되어 이방원을 도와 조선 개국에 참여하고 태종의 왕권강화, 제도정비에 공헌하며 좌명공신에 녹훈되었다(보물 제1469호). 1417년 초대 전라병마절도사가 되어 전라도 53주 6진을 통치하던 그가 전라병영성(사적 제397호)을 강진에 축조했다. 병조판서로서 북방6진 설치를 주장하고, 세종 때 외교로 명나라의 조선 승인을 이끌었으며, 문치국가의 기틀이 됐던 집현전 대제학에 올랐다.

◇청백리 마승 후손, 의병으로 진주성 전투 참전

마천목의 네 아들 중 마승(1393~1463)이 평안우도절제사, 충청도절제사, 경주부윤, 중추원사를 거쳐 장흥군에 봉해진 원종공신이자 청백리였다. 마승은 세조 즉위에 의분하여 벼슬을 버리고 곡성으로 낙향했으며 시호는 문간공이다. 마혁인의 17세손 마성훈(1533~1601)은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고경명 부대에 합류해 활동했고, 종형제 중 마륜, 마응훈, 마운종, 마온종, 마창종 등 5형제는 진주의 남강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의인들이다.

◇가훈이야기와 종가 보물

19대를 이어 전승되던 수많은 가문의 보물이 화재로 소실됐다. 다행히 마천목영당 충정묘를 중건할 때 마룻바닥에서 발견된 마천목공신녹권이 국가 보물 제1469호로 지정됐다. 집안에는 효행·충절에 관한 이야기가 내려오는데, 이 전승 설화가 가훈이 된다. 마천목은 태종이 특별히 배려할 만큼 알려진 효자로서 설화의 주인공이다. 곡성 섬진강에서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하던 마천목이 고기잡이 어살(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둘러친 장치)을 만들기 위해 돌을 주워왔는데 도깨비가 변한 돌인지라 도깨비가 돌려달라했다. 장군은 섬진강 하류에 어살을 막아주면 돌려주겠다고 하여 그리했다는 설화다. 실제 섬진강에 바위들이 쌓인 보와 어살이 남아있어 후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600년간 전라도 지킨 전라병영성 주역 마천목

마천목이 전라병마절도사로 강진의 병영성(兵營城)을 축성한 것에 관한 설화도 충의를 전한다. 병영터를 물색하던 중 강진 수인산에 올랐다가 잠시 졸 때 꿈에 노인이 나타나 활을 쏘아보라 하였는데, 깨어나 화살이 박혔던 그 자리를 찾아가니 화살이 박혀 있고 그 자리가 성터로 마땅해서 터를 잡았다고 한다. 성곽의 둘레를 정하지 못할 때도 화살이 박힌 자리 주변으로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있어 그 주위에 성곽을 쌓도록 했다는 것이 설화 내용이다. 설성(雪城)이란 별칭은 이렇게 마천목 장군과 관련이 있다. 이때 축조한 성과 진지, 전함 판옥선 등을 발전시키면서 남쪽바다 방비가 안정되었다는 점이 종가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종가 입구의 보호수
마천목 장군 영정
강진 전라병영성 / 사진제공 강진군
보물 제1469호 마천목좌명공신녹권 / 국립고궁박물관 위탁보관(www.gogung.go.kr)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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