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0)단꿈
<제4화>기생 소백주 (40)단꿈
그림/이미애(삽화가)
그러고 보면 김선비 자신은 이 같은 허망한 수작질에 잠시 놀아나 퇴자를 먹더라도 처지가 좀 덜한 편이었다. 벼슬을 돈 주고 사려한 극한 수렁에까지 나가떨어진 주제에 그것도 성사 시키지 못하고 집안까지 말아먹었으니 저 기생에게 궂은 속을 보여 한 끼 허기를 면한 것쯤이야 치욕이라 할 것도 없었다.
“과거에 급제도 못하였고, 벼슬을 하지도 못했기에 지킬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무슨 체면이 남아있다고 헛된 망상을 이리 붙잡겠느냐!”
소백주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번뜩 뇌리에 스쳐오고 그 집 문을 터덜터덜 쫓기듯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김선비는 나지막이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아득히 눈을 감았다.
한 동이 술을 들이 켠 탓으로 그 취기가 한껏 올라 거의 신선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정신 속으로 곧이어 떠나갈 깜깜한 낯선 밤길이 걱정되었건만 김선비는 그만 꾸벅꾸벅 잠이 몰려들었다. 하루 종일 고단하게 걸어온 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며 자꾸 눈꺼풀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그렇게 얼핏 찰나의 잠에 빠졌던 것일까! 어두컴컴한 의식 바깥으로 봄밤의 별이 가득 하늘을 채우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이 밤 꽃잎 지는 아름다운 광경이 달빛에 스치는 것이었다. 거기 아름다운 선녀 같은 여인이 방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꿀 향내 가득한 옷섶에서 흠흠 건강한 계집의 진한 살 향내가 물씬 풍겨오는 것이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계집의 보드라운 살 향내인가! 집 떠나고 그새 삼년 남의 집 사랑방에 머물며 이냥 홀로 나이만 먹어왔지 않은가! 김선비는 코끝을 향내 나는 계집의 옷섶 깊숙이 박으며 슬그머니 눈을 떴다.
“선비님! 어서 일어나세요!”
언뜻 잠든 새 단꿈을 꾸었단 말인가? 번쩍 눈을 뜨고 보니 일하는 아낙이 앞에 서있었다. ‘이제 낙방 하였으니 이 집을 어서 나가라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고 김선비는 쓴 입맛을 다시며 끙! 하고 신음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어디로 발길을 돌려 밤이슬을 피해 한데 잠을 자고 또 길을 떠난단 말인가? 마음에서 온갖 고민이 뒤 헝클어져 사납게 샘솟았다.
“선비님! 어서 방으로 드시랍니다!”
‘어엉! 시방 뭐라고 했나? 방으로 드시라니!’ 순간 김선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과연 자신의 글이 오뉴월 불어오는 훈풍처럼 아니면 달빛에 스치는 밤 꽃잎처럼 소백주의 마음을 한바탕 뒤 흔들어 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어 어흠! 그 그게 무 무슨 말이더냐?”
김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일부러 태연을 가장하며 일하는 아낙을 보고 말했다.
“안주인께서 선비님을 어서 안으로 모시랍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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