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2)선우후락(先憂後樂)
<제4화>기생 소백주 (42)선우후락(先憂後樂)
그림/이미애(삽화가)

그림/이미애(삽화가)

“으음! 인류의 역사 이래로 네 가지 삶의 유형은 이와 같소. 첫째는 공자를 필두로 하는 유가(儒家)의 삶이요. 사람의 본성을 밝혀 인의정치를 통해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요. 둘째는 묵자를 필두로 하는 묵가(墨家)의 삶인데 그들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고 약자를 위한 봉사의 삶을 살며 공리(公利)를 실현하는 것이요. 셋째는 노자를 필두로 하는 도가(道家)의 삶인데 이들은 인위를 거부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요. 넷째는 석가를 필두로 하는 불가(佛家)의 삶인데 모든 삶의 무상(無常)을 체득하고 해탈(解脫)을 실현하는 것이요. 이런 네 가지 삶의 유형이 현재까지 인류가 발견한 인간 삶의 전부로 알고 있소.”

김선비는 힘주어 말했다.

“역시 글을 읽은 선비님이십니다. 그러나 저 같은 기생에게는 그게 맞지 않지요.”

소백주의 낭랑한 목소리가 대발 저쪽에서 들려왔다. 그렇다면 기생에게는 무슨 네 가지 삶의 유형이 있는 것일까? 김선비는 소백주의 말에 흠칫 놀라며 조용히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생 소백주의 음성이 다시 김선비의 귀 고막을 울려왔다.

“세상에는 첫 번 째로 기생을 업신여기면서도 기생을 가까이 하여 쾌락적으로 이용하려는 삶이 있고, 두 번째로는 기생을 업신여기며 사람으로 취급하려 하지도 않고 짐승대하 듯 하는 삶이 있고, 세 번째로는 기생을 불쌍히 여겨 동정을 하려는 삶이 있고, 네 번째로는 기생을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함께 하려는 삶이 있지요. 선비님께서는 제 말의 뜻을 잘 아시겠지요?”

소백주의 그 말을 들은 순간 김선비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기생 소백주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에서 이미 세상의 허상과 삶의 모순과 오묘한 깊이를 모조리 헤아리고 있었다. 김선비는 역시 소백주로구나 생각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으음!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구려! 내 아직껏 유가도 묵가도 도가도 불가도 다 터득하지도 못했고 동경(憧憬)만 할 뿐 또 그러한 삶을 살아보지도 못했다오. 다만 저 북송조의 선비 범중엄 선생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밝힌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낙이락여!(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천하 사람들에 앞서서 근심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라’ 희!미사인, 고수여귀!(噫! 微斯人, 吾誰與歸!) 아! 이런 사람들 없었다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배우고 살아갈 것인가? 라고 했는데 내 비록 재주가 모자라서 뜻을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그 범중엄 선생의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 바로 선비의 정신이라 여기고 살아간다오. 그런 정신 속에 어찌 빈부귀천(貧富貴賤)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순간 김선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을 가르고 쳐져있던 기다란 대발이 스르륵 올라가더니 소백주의 낭랑한 목소리가 오뉴월 이른 새벽 푸른 풀잎에 이슬 구르듯 흘러 나왔다.

“서방님! 소녀 절 받으십시오!” <계속>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