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3)봄밤의 혼례식
<제4화>기생 소백주 (43)봄밤의 혼례식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다홍치마에 청색 저고리를 입은 화사한 젊은 여인이 김선비를 향해 무릎을 꿇고 단정히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자리에 오르고서도 뜻을 지키는 이를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뜻을 지키고 사는 무명(無名)의 선비가 더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서방님!”

고운 얼굴의 아리따운 여인이 말을 이었다. 그녀는 바로 소백주였다. 절을 마친 소백주가 순간 눈앞에서 쓱 사라져 버렸다.

“허어! 그 참!........”

저만큼의 정신을 지닌 여인이니 기생이면서도 천하 사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 아니었겠느냐고 김선비는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지르면서 말문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때 김선비 앞으로 일하는 아낙이 새로 지은 옷 한 벌을 들고 나타났다.

“주인아씨가 선비님과 오늘 밤 정식으로 혼례식을 올리시겠답니다. 옷 갈아입으시고 사모관대를 입으시고 마당으로 나오십시오.”

일하는 아낙의 말을 들은 김선비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아챘다. ‘흐흠!....... 글을 배워 벼슬살이를 하지는 못했지만 계집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계집의 서방이 될 운은 있었나 보구나! 아무렴 어떤가! 이 지경에 이른 마당에 뭇 사내들이 안고 싶어 안달인 조선 최고의 기생 소백주를 아내로 얻어 그녀의 서방이 되는 것도 과히 싫은 일은 아니로고!........’

이렇게 생각한 김선비는 입었던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의기양양하게 내준 새 옷을 잽싸게 갈아입었다. 새 옷을 걸치고 사모관대를 입고 나니 글줄이나 읽는다는 연약한 서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위풍당당한 제법 근사한 사내로 탈바꿈을 하는 것이었다. 벼슬이라도 하나 꿰차고 이렇게 사모관대를 걸치고 고향에 금의환향 했더라면 금상첨화이겠건만 그런 운명은 김선비에게는 아직 없었다.

그렇다고 조금도 서운해 할 일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의 글이 소백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지금쯤 수원 밤거리 어디를 헤매며 잠자리가 될 만한 남의 집 문전을 기웃거릴 처량한 강아지 신세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잠시 후면 내로라는 조선의 글 잘한다는 선비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오로지 단 한 사람으로 선택된 김선비 자신이 조선 최고의 기생 소백주를 품에 안고 이 한밤 격렬한 사랑을 나누며 지새울 것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행운인 것만은 분명했다.

안마당에 청사초롱 홍사초롱 불 밝혀 켜지고 때마침 살구꽃 흩날리는 봄밤에 달은 휘영청 밝으니 혼례식 치르기는 그만한 밤이었다. 긴 덕석 깔려진 가운데 대례상이 놓아져 있는데, 어디서 잡아왔는지 암탉수탉이 한 쌍 묶여있고 밤 대추가 가득히 담겨져 오늘밤 탄생할 부부의 백년가약을 축복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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