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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경주정씨(慶州鄭氏) 참의공파 정효종종가 <41>

기사승인 2021.01.06  2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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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경주정씨(慶州鄭氏) 참의공파 정효종종가 <41>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의병·군량 모아 나라지킨 여섯 충신 배출

신라 명족 후예 순천 대표 가문
평상시 효자문, 국난시 충의문
이순신 휘하에서 정씨들 활약
고문서
·종택은 보존 조치 필요

옥계서원전경1

전남 순천을 대표하는 명문집안으로 경주정씨가 있다.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하기 위해 가문의 재산과 인력을 바쳐 군량미와 의병으로 바꾸고 의주로, 노량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형제 충신들을 옥계서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호)에 모시고 추모한다. 가문을 빛낸 충의지사를 20세대에 이르기까지 추모하고 있는 순천 경주정씨 참의공파 정효종종가를 찾아 충의 명가의 내력을 살펴본다.

◇신라 개국공신 지백호 시조

경주정씨는 신라를 개국한 6촌 중 진지촌 촌장 지백호를 시조로 모신다. 경주정씨는 고려 군기시윤과 평장사를 지내고 월성군에 봉해진 정진후(?~?)를 중시조로 모시고, 경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잇고 있다. 시조 50세인 정지년(1395~1462)은 하위지 성삼문 등과 함께 문과 급제하여 성균관사예로 있을 때 단종이 손위하자 물러나 노송정 정자를 짓고 스스로를 ‘망칠옹(사육신에 한사람 추가됐다는 의미)’이라 부르며 경서연구에 전념했다. ‘노송실기’를 남겼고, 순천 옥계서원, 남원 덕암서원, 공주 숙모전에 배향됐다. 51세 정효종(1434~1497)은 문과 급제하여 승정원 좌승지, 예조참의, 오위장에 올랐고 좌리공신에 녹훈됐으며 참의공파를 열었다.

◇조선 공신 정효종 참의공파 열어

참의공의 3세인 정내(1491~1548)는 남원에서 태어나 계모의 구박을 피해 순천에 입향했다. 훈련원습독을 지낸 왕침의 딸과 혼인하고 돈용교위를 지냈으며, 남원의 부모를 잘 모시는 사친지효의 효행으로 그의 집을 ‘효자지문’이라 했다고 한다. 부자인 왕씨의 재산을 물려받아 세거하게 되었다. 4세 정승복(1520~1580, 호는 옥계)은 무과에 급제하고 옥구현감을 지냈으며, 선전관으로 을묘왜변(1555)에 공을 세웠고, 어란진만호로 기미왜변(1559)에 참전해 추자도에서 왜선 1척을 포획한 맹장으로 웅천현감, 영덕현령을 거쳐 함흥 판관을 역임하고 낙향해 옥계정을 지어 석천 임억령과 교유했다. 임억령은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돌아와 계곡물에 칼을 씻으며, 쓸쓸한 야복을 입고 한적한 집으로 드는구나’라는 시를 헌정했다. 문강공 안방준이 정승복의 사위다. 정승복의 아들 손자들이 이순신 휘하에서 종군하며 나라 지킨 충신으로 유명하다.

◇임란에 의로운 형제들 활약

5세 정사익(1542~1588)은 학문에 조예 깊고 덕행이 높았다. 김굉필을 추모하는 경현당 중수에 앞장서고 스승인 구암 이정이 타계하자 서러워서 글을 짓고 제사를 모셨다, 이런 행적이 알려졌고 사림이 천거해 창신교위, 충무위부사직을 역임했다. 정사익의 동생 정사준(1553~1599)은 이순신의 군관으로 조총을 제작하는 등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됐다. 그의 동생 정사횡(1558~1635)은 임진왜란에 활약하고 정유재란에는 수백석 군량미를 모아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서 노량해전에 공을 세웠다. 정사익의 동생 정사립(1564~?)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조정에 올릴 장계를 작성하는 최측근 군관이었다. 6세 정빈(1566~1640, 호는 곡구)은 숙부 정사횡과 사촌 정선과 함께 조정의 식량 고갈 소식을 듣고 의병군과 군량미 천석을 모아 뱃길로 의주 행재소까지 운반했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고, 낭천·아산 등의 현감을 역임했으며 옥계서원에 배향됐다.

◇소실 위기의 종택

종가는 교지, 분재기 등 고문서를 보존하고 있다. 4m 길이의 분재기는 9세 정태주(1647~1728)가 기록한 것으로, 문중재산과 종통재산을 구분하는 등 학술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최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전시한 바 있다. 옥계서원에서 순천향교 유림들이 매년 추모제를 올릴 때 생식으로 제수로 올리는 특징이 있다. 종가의 접빈음식으로는 닭죽, 한과, 식혜가 있다. 종택은 사당과 안채, 사랑채, 행랑채, 창고 등이 남아 있으나 관리가 어려워 소실 위기에 있다. 담장, 정원, 계곡 등은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옥계서원 전경2

 

 

옥계서원 경모재. 서원의 동재로서 유생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장소였다.

 

 

옥계서원 표지석
옥계사
오사재 전경
오사재
종가 안채
종가 사당과 장독대
종가 입구 돌담
종가 옆으로 흐르는 계곡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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