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허! 그새 계명축시(鷄鳴丑時)라!……”

조대감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문 밖으로 나갔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옥동이 기거하는 방문 앞으로 가서 거기 신발이 있나 없나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쫓겨오거나 도망 나왔다면 분명 그 방문 앞에 옥동의 신발이 있을 것이었다.

‘허! 참으로 아비 노릇 하기 참으로 힘든 일이로구나!’

조대감은 중얼거리며 칠흑 어둠을 헤치며 콩닥콩닥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옥동의 방문 앞으로 슬금슬금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 달빛도 없는 밤은 그야말로 먹빛 어둠이었다. 조대감은 눈을 끔벅이며 옥동의 방문 앞 댓돌 위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가물가물 무엇이 놓여 있는 듯 없는 듯 눈이 뿌옇게 흐렸다. 조대감은 두어 걸음 성큼 댓돌 위로 향해 걸어갔다. 다시 눈을 뜨고 댓돌 위로 눈빛을 주었다. 이리저리 눈여겨 바라보는데 아뿔싸! 분명 거기 댓돌 위에 어스름 놓여 있는 것이 있었다.

‘도도 도대체, 이이 무!……무무! 무엇인가?’

조대감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허허!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조마조마 불안해했던 이레를 못 견디고 스승 윤처사의 말을 듣지 않아서 쫓겨온 것일까? 아니면 도망을 온 것일까?

조대감은 슬그머니 몸을 날래게 놀려 댓돌 위로 번쩍 다가가 소리 없이 손을 쓱 건네 잡히는 것을 만져 보며 자세히 바라보았다.

‘허억! 이이! 이럴 수가!’ 아아! 그것은 분명 옥동의 신발이었다. 역시 우려하던 바대로 옥동은 이레를 못 넘기고 결국 귀가(歸家)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조대감은 순간 울컥 가슴에서 불같은 분노가 이글이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분노가 아니라 그것은 쏟아지는 슬픔이었다. 자존심(自尊心) 다 버리고 친구인 윤처사를 세 번이나 찾아가 겨우 스승 삼아주었는데, 이리 허무(虛無)하게 끝이 나고 말았단 말인가! 역시 아니 되는 놈은 제아무리 용을 써도 아니 되는 가보구나! 조대감은 그 자리에 옥동의 신발을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뜨건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아아! 비가강개(悲歌慷慨) 천붕지괴(天崩地壞)로다! 내, 다시는 이놈 글공부에 신경 쓰지 않으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집안이 망하든 그것은 귀자(貴子)를 가질 복(福) 없는 내 운명(運命)이고 내 팔자이리라! 차라리 별 재주가 없어 그냥 여기 조용히 눌러사는 것이 집안 화평(和平)에 더 좋으리라! 잘 생기고 글재주 뛰어난 허견이 과거급제하여 결국, 제 아비 영의정 허적을 죽이고 집안을 온통 몰락(沒落)시켰는데, 예로부터 똑똑한 자식이 집안 망해 먹는 법, 못난 자식 둔 까닭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지 않겠는가! 으으흐흐흐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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