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훈(더강한시민사회연구소장)

 

서정훈 더강한시민사회연구소장

의정(醫政) 갈등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전공의에서 교수로 이어진 ‘사직투쟁’이 이제 총파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 의대 증원’을 못 박고, 의사 협회는 ‘2000명 절대 불가’를 못 박았다. 연일 서로가 원칙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우려가 크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6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이미 현장에서는 응급실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전북의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가 수혈을 거부당해 결국 사망했고, 부산에서는 심근 경색 환자가 대학병원에서 진료 불가능 통보를 받다가 끝내 숨졌다. 당장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희망하는 항암환자들은 6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과 동시에 진료 축소를 결정하면 수술 대기와 입원 거부 사례는 극심해 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가 버틸 여력은 없어진다.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 죽음으로 내 몰리는 대한민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명백한 의료대란을 야기시켰다. 환자 피해가 속출하는 사태를 맞아 정부는 환자단체·의료계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 테이블을 열어 사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내놓은 10년간 10조원을 투입할 의료 분야 개선 방향 논의 제안에 거부할 명분이 없다. 총파업 불사 원칙만 고집할 상황이 아니다. 의료계의 막무가내 식 집단행동을 국민들은 동의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환자의 치료와 생명권은 정부와 의협간의 경쟁적 강대강의 싸움의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할 대상이 아니다. 더 이상 버틸 힘도 생명의 연장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절실한 중증 환자들에게는 피눈물 나게 소중한 시간과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의정 갈등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추진 당시, 의료계는 전공의부터 동네의원까지 대규모 파업에 돌입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때 정부는 ‘의대정원 10% 감축’과 수가 인상 등으로 양보하면서 갈등의 막을 내렸다.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때도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선언한 후 전공의들은 집단휴진에 들어갔고,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하고, 의대 교수들의 사직 선언이 나왔다. 결국 정부는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마무리됐다. 지난 1998년을 끝으로 의대정원은 단 한명도 늘어날 수 없었고,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의사수가 부족하고 의료수요에 따른 의대정원의 확대가 불가피함을 확인했다.

우리 국민들이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에 동의하는 이유는 필수의료의 붕괴 때문이다. 최근 피부·성형 등 미용의료 시장의 급속한 확대도 이유 중 하나다. 이들 의원급 의료기관은 의대를 갓 졸업한 일반의(GP)를 연봉직의로 고용, 이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10년 이상 된 직장인과 맞먹는다. 하지만 필수의료 전문의 과정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전공의 등 총 4~5년을 더 거쳐야 한다. 게다가 전공의의 근무시간은 주당 80시간으로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노동 강도다. 이에 대한 보상도 적다. 당연히 전공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대 정원 결정 권한은 정부에 있다. 역대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의대정원 확대’다. 의사를 대폭 늘려 놓으면 낙수효과로 의사가 없다고 하는 곳에 누구든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필수의료를 하지 않겠느냐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현재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다만, 그 숫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또 필수의료 수가의 적절한 인상도 제기되고 있다. 필수의료 부족 지역 근무에 대한 보상이나 야간 수가 현실화, 4∼5년차 전공의 보상 등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의대정원 사태가 국민이 우려할 수준의 파국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다시 한번 진지한 의정 테이블 마련과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의정, 그들만의 미숙한 싸움에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픈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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